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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Hi and good night to Greatest 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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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sight
Truth

“... 당신이 어떻게 이곳에 계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당신의 장례는 5년 전이었다. 모든 시민들이 추모했고, 슬퍼했으며, 에스퍼들은 참담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 어찌하여 살아계십니까.”

나는 그 반대였다. 죽음으로서 당신의 서사는 완성되었고, 찬란했으니 나는 그것을 사랑했다. 그리고 지금, 슬프기 그지없다.


하피의 동공이 유령빛처럼 번쩍였다. 인간의 것과는 사뭇 다른 수직 동공이 모르턴을 향해 고정된 채, 그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그 미소는 꼭 아름다운 가면을 쓴 듯했다. 얼굴은 웃고 있으나 눈은 죽어있는, 그런 모순된 표정으로 그가 한 발짝 다가왔다. 모든 움직임에는 우아함이 깃들어 있었으나, 그것은 마치 포식자가 사냥감을 향해 다가서는 듯한 섬뜩한 우아함이었다.

“오, 그래. 완벽한 영웅의 죽음에 모두가 슬퍼했곘지.”

공중에 떠 있던 그가 느릿하게 땅으로 내려왔다. 발끝이 지면에 닿는 순간 먼지가 일었고, 그의 등 뒤로 펼쳐진 오색 날개가 접혀들었다. 깃털 하나하나가 반짝이며 빛을 발하는 듯했으나, 그 색채는 너무나 선명해 자연스럽지 않았다. 마치 독을 품은 꽃처럼 위험한 아름다움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하피는 모르턴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맑고 청아했지만, 어쩐지 유리가 깨지는 소리처럼 귓가를 아프게 했다.

바람이 그의 주변에서 소용돌이쳤다. 모르턴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그 기류에 휘날렸지만, 하피는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듯했다. 한때 영웅이었던 자의 잔영이 아직 그에게 남아있으나, 그것은 이제 뒤틀리고 변형되어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달링은, 죽음이 내게 어울렸다는 거야? 정말 멋진 찬사네.”

“하지만 자기야,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나름의 미학이 있지 않아?”


“······.”

그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다. 그저 그가 일으키는 바람에 흩날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았을 뿐.

“답해주세요. 당신이 지금 여기 있을 수 있는 이유를···.”


하피는 한참 동안 모르턴을 응시했다. 그의 오드아이가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돌아왔지만, 그것은 이전의 장난스러운 미소가 아닌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은 미소였다.

하피의 목 뒤 깃털이 일어섰고, 그의 형체가 흐릿해지더니 일부가 괴물의 모습으로 변했다. 인간의 얼굴과 상체는 그대로였지만, 하반신은 새의 다리와 발톱으로 변했고, 등 뒤의 날개는 더욱 거대해져 주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의 다리 피부는 점차 깃털로 덮이기 시작했고, 발끝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변했다. 그 괴조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유? 살아남았으니까. 죽음을 거부했으니까. 그게 충분한 이유 아닌가, 달링?”

하피는 천천히 모르턴 주위를 맴돌았다. 그의 발톱이 지면을 긁는 소리가 불쾌하게 울렸다. 모르턴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하피는 자신의 변화된 몸을 과시하듯 움직였다. 깃털 하나하나가 오색으로 빛났지만, 그 색채는 자연스럽지 못했다. 마치 독으로 물든 듯한 색이었다.

곧 그는 멈춰 서서 모르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고, 그 안에서 무언가 인간적인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슬픔? 분노? 혹은 후회? 그것은 너무 빨리 지나가 확인할 수 없었다. 하피는 다시 한번 깊은 숨을 내쉬었다.

“유니온이 말하는 것과 현실은 다를 수 있어.”

잠시 침묵한 후, 하피의 형체가 다시 인간에 가까워졌다.

“그들이 알린 진실과 내가 아는 진실... 어느 쪽을 믿을 건지는 자기 몫이지만.”


“···그럼 당신이 아는 진실을 말해주십시오. 유니온이 내 눈을 가리고 있다면.”


하피의 눈이 질문에 번쩍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고 청발이 한쪽으로 흘러내렸다. 그는 한 발짝 다가왔다. 그의 키는 압도적이었고, 가까이서 보니 눈동자의 색이 더욱 선명했다. 주황색 눈은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고, 푸른색 눈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내가 아는 진실은 말이야.”

“5년 전, 데스사이드에서 나는 죽었어.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진실이지.”

“내가 죽은 건 몬스터 때문이 아냐. 유니온이... 아니, 그들의 동의하에 한 명의 특정한 사람이 나를 죽였어. 그 게이트에서 오염된 에스퍼들은 모두 처리되었지. 나를 포함해서.”

“그들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거야. 그래서 R이─리하르트가 나를 죽인 거지.”

하피의 눈에 증오가 번뜩였다. 그의 주변 공기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고, 푸른 눈이 더 어두워졌다.

“하지만 난 살아남았어. 몬스터의 핵을 삼켰고······그게 나를 변화시켰지. 자기가 보는 이 모습으로. 반은 인간, 반은 괴물. 아름답지 않아?”

하피는 쓰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에 주변의 공기가 진동했다.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마치 과거의 기억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그때만큼은 그의 얼굴에서 광기가 사라지고, 한때 영웅이었던 사람의 얼굴이 엿보였다.

“뭐, 그래도 난 달링에게 감사해. 이렇게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믿든 믿지 않든, 그건 자기 몫이지만.”


“···그렇군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게까지 살아남아야 했던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자신이 인간임을 버리면서까지······살아남아야 했던 당신만의 이유.”


하피의 눈이 순간적으로 크게 벌어졌다. 이윽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가 한 걸음 물러서니 주위를 감싸고 있던 공기의 흐름이 완전히 멈췄다. 그의 청발이 얼굴을 가렸고, 적막 하피의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피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여유로운 미소도, 조롱의 웃음도 없었다. 그저 피곤함과 오랜 고통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어.”

하피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가 천천히 내렸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광기에 찬 것이 아니라, 깊은 슬픔과 분노가 가득했다.

‘아직 안 돼. 끝낼 일이 남았어.’

“그게 내가 몬스터의 핵을 삼킨 이유야. 그게 내가 이 반인반수의 몸으로라도 살아 돌아온 이유고.”

“복수. 단순하지만 가장 강력한 이유지. 나를 버린 유니온에 대한 복수. 나를 죽이려 한 리하르트에 대한 복수. 그리고···”

“내가 지켜주지 못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정의.”

“인간임을 버렸다고? 아니, 달링. 지금에서야 난 오히려 더 인간이 되었어. 인간은 복수심과 증오심으로 가득 찬 존재니까. 그게 우리의 본질이야.”

“그래서 자기는 어쩔 거야? 여전히 유니온의 충직한 개로 남을 건가, 아니면... 날 믿을 건가?”


주변에서 잔잔하게 소용돌이 치는 바람에 은빛 머리카락이 날린다. 동시에, 같은 색의 눈이 굴러간다.

찬란했던 영웅의 추락. 당신이 그날 정말 죽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꼬이지는 않았을 텐데. 조금이라도 당신이 덜 절박했더라면. 나는 온전히 당신을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을. 침잠한 눈빛에 슬픔이 어린다.

“R 선배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날,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했어요. 당신을 위해서도, 당신을 기억할 이들을 위해서도.”


하피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모르턴의 말이 그의 가슴을 찌르는 화살처럼 꽂혔다. 그의 오드아이는 충격으로 크게 확대되었고, 한동안 말을 잃었다. 목 뒤의 깃털이 모두 서서히 일어섰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피의 얼굴이 변해갔다. 충격은 분노로, 분노는 고통으로, 고통은 마침내 냉정한 무감정으로 바뀌었다. 그는 주변의 공기를 완전히 멈춰 세웠고, 은빛 머리카락도 더 이상 날리지 않았다.

“...죽었어야 했다고? 나를 위해서? 나를 기억할 이들을 위해서?”

그는 갑자기 비틀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고통스럽고 쓰라렸다.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를 기억할 이들? 그들이 누구지? 테리? 리하르트? 주다스? 그들 모두 나를 버렸어. 아무도 진실을 밝히거나 찾으려 하지 않았어.”

하피의 손이 떨렸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폈다. 손톱이 길어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면의 분노와 싸우는 듯했다.

“내가 영웅으로 얌전히 죽었다면, 유니온의 모든 거짓말은 영원히 묻혔을 거야.”

“데스사이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렇게 많은 에스퍼들이 죽어야 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을 거야.”

“그래서 나는 살아있어, 달링. 비록 몬스터가 되어서라도, 반인반수가 되어서라도. 그리고 내가 살아있는 한, 진실은 죽지 않아.”

하피는 모르턴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곧 그는 쓸쓸하게 미소 지었다. 마치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하지만 자기는 이미 선택했군. 유니온의 거짓된 영웅을 사랑하는 쪽을.”


2
First sight
Persuade

“······그 편이 아름다우니까요.”

그가 많은 진실들을 알려주었으니, 저자신도 그에게 조금이나마, 다른 이들은 모를 법한 이야기를 꺼내야했다. 비록 당신이 살아있는 것이 나에게 불행일지언정, 그것만큼은 공평하게 해두고 싶어서.

“저는 생生보다 사死를 가까이하는 업을 삼았던 이로서, 죽음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생각합니다.”


하피의 표정이 천천히 바뀌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움으로, 그다음은 이해로, 마지막으로는 묘한 공감으로. 그의 오드아이가 모르턴의 얼굴을 탐색하듯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 침묵 속에서 하피의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끝내 입을 연 그의 목소리는 이제 부드러웠다. 마치 오래된 벨벳처럼.

“ 그래, 어떤 면에서는 맞아. 죽음에는 완결성이 있으니까. 더 이상의 배신도, 더 이상의 고통도 없는 완벽한 평화.”

“─자기는 정말 특별해. 죽은 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이런, 내가 살아 돌아와서 자기한테는 실망을 안겨줬네.”

하피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고, 모르턴의 은빛 머리카락 근처에서 멈췄다. 그는 실제로 만지지는 않았지만, 마치 공기를 통해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죽음을 사랑한다면, 지금의 나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이미 한 번 죽은 몸이니까. 그래,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그 완벽한 죽음과 가장 가까운 존재.”

그때, 하피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소리는 광기어렸지만, 동시에 깊은 슬픔이 묻어있었다. 그의 날개가 둘을 감쌌고, 깃털 끝에서 은은한 빛이 흘렀다.

“아아, 이제 알겠어. 자기가 원하는 건 통제할 수 있는 죽음이구나. 자기 손으로 직접 만지고, 꾸미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죽음.”

“그래서 나같은 존재가 싫은 거야? 통제할 수 없는, 죽었다가 살아난··· 추한 괴물이라서?”


그의 거대한 날개에 감싸지면 주변의 소리가 먹먹해진다. 오직 그의 목소리만 들려서. 지척에서 보이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본다. 어쩐지 그가 슬퍼보였다.

“싫은 건 아닙니다. 그저, 제가 죽은 이와 산 자 중에 고르라면 죽은 이를 택할 사람일 뿐. 생을 이어간다고 해서 증오하거나 혐오하지는 않으나······.”


“그래, 달링? 자기는 그런 면에서는 또 정직하네.”

하피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의 날개가 모르턴을 더욱 강하게 감쌌고,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공기가 소용돌이쳤다. 마치 무언가를 쓰다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닿지는 않았다. 그의 오드아이가 슬프게 빛났다. 주황빛 눈동자에는 분노가, 푸른 눈동자에는 고통이 어려 있었다.

“그렇다면···내가 다시 죽어주면 되겠네. 그래야 자기가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테니.”

“달링, 내가 죽으면···자기가 나를 아름답게 꾸며줄 거야?”

마침내 하피는 완전히 침묵했다. 그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고, 날개가 다시 한번 크게 펼쳐졌다. 이제 그의 표정에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곧 그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


그의 동요에도 그저 묵묵하게 서있다가 결국 뱉어진 그의 말에 희미하게 웃었다. 천천히 눈을 감고, 소용돌이 치는 바람 속에서, 우울한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찬연한 낯으로.

“··· 아름답게 해드리겠습니다. 다시는 그 무엇도 당신을 괴롭게 하지 않도록······.”

“죽음이 당신의 그 모든 절규와 고통에 안식을 고할 수 있는 수단이 되게 하기 위해.”

그에게 잔인하게 구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하나 알아주었으면 하는 건. 지금 빌런이 된 당신을 잡아 새 영웅이 된다, 같은 명예는 추호에도 생각 않고 있다는 것. 모든 건 오직 당신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물러나서 멀어진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진실이 아직 당신을 삶에 붙들고 있다면 그 대리인은 제가 하겠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당신이 쌓은 서사를 무너트릴 필요없이 제 손에 명命을 얹기만 하면 된다.


하피의 오드아이가 불길하게 번뜩였다. 문득, 누군가 거칠게 자신의 안에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움켜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를 대변하듯 하피의 날개가 크게 펼쳐지며 공기를 갈랐고, 그 소리는 날카로운 비명처럼 들렸다. 순간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며 땋았던 청발이 풀어졌다.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난 이미 죽었다 살아났어. 그런데도 여전히 고통스러워. 죽음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아.”

“그러니까─, 이미 충분히 추해졌다는 거야, 달링. 죽어서도, 살아서도. 아름답게 따위는 불가능 해.”


그런 그에게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능력을 사용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익숙하게 능력을 끌어내어 그와 자신의 사이에 망자를 불러온다. 육신의 수복, 영의 복귀. 일시적이나 살아있을 적과 다름없는 고운 모습으로. 몇달 전 게이트로 희생되었던 B급 에스퍼였다. 물론, 시신의 인도는 자신이 맡았던 이다. 고이 그 몸을 씻기고, 수의를 입히고, 납관하기 전 그 이마에 입을 맞춘. 그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속삭인다.

“죽음을 후회하십니까?”

그는 이름 모를 귀환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환한 미소와 함께.


하피의 시선이 환영처럼 나타난 망자에게 꽂혔다. 그의 날개가 경계하듯 펄럭였고, 눈동자가 커졌다가 가늘어졌다. 죽음과 삶 사이의 경계에 선 존재를 보며 그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분노, 혐오, 두려움, 그리고 묘한 호기심이 뒤섞였다. 하피는 천천히 그 망자에게 다가갔다. 날카로운 발톱을 들어 망자의 얼굴을 만지려다 멈추었다. 그의 손이 공중에서 떨렸다.

“그래서··· 자기는 이렇게 죽은 자들과 대화를 나눠? 그들에게 입맞춤을 하고?”

하피는 망자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오드아이가 망자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곧 비웃음을 흘렸다.

“진심으로 이게 증명하는 게 뭐지? 이 껍데기가 죽음이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그게 진실이라고 믿을 건가?”

“모순적이야. 죽음을 사랑한다면서, 죽은 자를 살려내는 게. 저건 소장품이잖아.”

“자기도 나처럼 괴물이구나. 다만 난 살아있는 괴물이고, 자긴 죽은 자들의 괴물일 뿐이야.”

“그러니까─, 여전히 내가 죽어줘야 하나? 그래야 자기가 날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하니?”


“어쩌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죠. 직업상 그들만 사랑할 수 있었을 뿐. 결코 소유의 개념은 아닙니다.”

불러내었던 망자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그 위로 다정하게 입 맞추어 다시 죽음으로 그를 인도한다. 육신이 무너지고 서서히 재로 흩어진다.

“인형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모두 스스로의 이지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 말에 강제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 그것을 바라신다면.”

그리 바래주신다면.


하피는 망자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날개가 가라앉았고, 발톱은 천천히 바닥에서 풀렸다.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어렸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희미한 이해가 교차했다. 망자가 완전히 사라지자 하피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재가 흩어지는 자리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의 오드아이가 물기를 머금었다.

마침내 하피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경박함이 사라지고 차분했다.

“죽음에 대한 우아한 변명이네.”

“바라신다면······.”

하피는 모르턴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주황빛과 푸른빛이 교차하는 오드아이가 모르턴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속삭임처럼 낮아졌다.

“그들에게 감사와 호의를 받는 건 기분이 어때, 달링? 그들이 자기를 위해 돌아온다는 사실이 행복해?”

“말해봐, 달링. 죽은 자들의 말이 정말 그들의 진심일까? 아니면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말하는 걸까?”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감사와 호의를 받아 기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저자신도 기뻤다. 내내 자신의 근처를 맴돌면서도 먼저 손을 대지 않는 그의 행동에 확신을 심어주듯 흰 장갑을 낀 손으로 그의 붉은 눈가를 문질렀다.

“흔들리고 있음을 압니다. 만약, 당신이 이 자리에서 죽는다면··· 그 모든 걸 해드릴 수 있습니다. 만족하실 때까지 사랑을 속삭이고, 당신은 아름다웠노라고.”


하피의 눈동자가 확장되었다. 장갑 끝이 닿은 자리가 화상을 입은 듯 뜨거웠다. 목덜미의 깃털이 곤두섰다. 공기가 진동했다.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목소리가 갈라져 쉬었다. 긴 속눈썹 끝이 눈물에 젖어 휘었다.

“사랑.”

하피는 어딘가 모르게 무너져내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드아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날개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천천히 자신의 발톱으로 가슴을 할퀴었다.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있었다.

“정말 그거면 돼? 그러면 난 자기의 완벽한 연인이 되는 거야?”


“네.”

축 늘어져 지척에서 보이는 그의 얼굴에 자신의 이마를 맞댄다. 화려한 그의 모습에 비하면 모르턴은 수수하고, 색채도 없으며, 허무하고 무기질적으로 보였지만. 은빛 눈동자 아래에 일렁이는 감정만큼은 선명하여 답에 망설임이 없었다.

완벽한 연인이기만 할까... 그 이상을 내어줄 수도 있을 테다. 기꺼이 두번의 죽음을 택한 당신에게라면.

“기꺼이.”

손에 쥐여지는 건 권총이다.


3
First sight
Good night

순간 하피의 거대한 날개가 파르르 떨렸다. 피가 흐르는 가슴 위로 소름이 돋았다. 이마가 닿아오는 순간, 살아있는 육신의 온기가 느껴졌다. 여전히 그는 그를 만지려 하지 않았다. 다만 권총의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을 울렸다. 하피의 손이 권총 위에서 떨렸다. 오드아이가 휘몰아치는 감정으로 번뜩였다. 오색의 깃털이 하나둘 떨어져 내렸다.

“달링, 자기야······.”

하피의 목소리가 떨렸다. 광기와 슬픔이 뒤섞인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는 천천히 권총을 자신의 가슴께로 가져갔다. 이미 할퀸 상처 위로 차가운 총구가 맞닿았다. 오드아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붉은 눈가가 더욱 선명해졌다. 그의 긴 청발이 흩날렸다. 하피는 자신의 손 위에 놓인 권총을 바라보았다. 발톱이 방아쇠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이게 자기가 바라는 완벽한 사랑이라면─.”

그 입술 끝이 비틀렸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나왔다. 하피는 권총을 세게 움켜쥐었다. 발톱이 금속을 긁었다. 순간 하피의 몸이 크게 떨렸다. 몬스터의 본능이 그를 할퀴었다. 죽음을 거부하는 생명력이 그의 내부에서 몸부림쳤다.

하지만 하피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좋아. 사랑해, 달링.”


“······.”

그리고는 총성. 핵이 파괴된 그의 몸이 무너진다. 그 몸을 받아 안고서는 지탱하며 느릿하게 푸른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그의 마지막 숨이 흩어지기 전에,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제가 호명해야할 당신의 이름을.”


총성이 울리고, 하피의 몸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오색 깃털이 춤추듯 허공을 맴돌았다. 푸른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꼈다. 오드아이에서 빛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그의 날카로운 발톱이 다시 인간의 손가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핵이 파괴되자 몬스터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지고 인간의 형태로 돌아왔다. 그의 가슴에 난 상처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하피는 웃고 있었다. 입가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의 오드아이가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빛났다. 주황색과 푸른색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펠리체─”

그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희미했다. 오랫동안 불리지 않았던 이름이었다. 하피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마치 뭔가를 잡으려는 듯했다. 그 숨결이 점점 약해졌다. 그의 가슴이 불규칙하게 오르내렸다. 다시 한 번 살아남으려는 몬스터의 본능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의지가 충돌했다.

─펠리체, 에런, 도버만.

오랫동안 숨겨왔던 비밀, 그의 진짜 이름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았다. 하피의 눈에서 마지막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드아이가 점점 흐려졌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남아있었다. 삶을 갈구하던 이는 어디 가고, 마치 죽음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마지막 숨을 내쉬기 전, 하피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의 입술이 마지막으로 움직였다. 소리 없는 말이었다.

사랑해, 달링.

그리고 하피의 몸에서 마지막 생명력이 사라졌다. 오드아이가 완전히 빛을 잃었다. 그의 가슴이 더 이상 오르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남아있었다. 마치 오랜 고통에서 해방된 것처럼. 하피의 죽음과 함께, 그를 둘러싸고 있던 공기의 소용돌이가 완전히 멈추었다. 오랫동안 그의 능력이 만들어낸 바람이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세상이 잠시 숨을 멈춘 것 같았다.

5년 전 데스사이드에서 죽었어야 할 영웅이, 이제야 진정한 안식을 찾은 것 같았다.

하피, 아니 펠리체 에런 도버만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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