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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再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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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共犯
재회

“ ······.”

노래를 마치고 잠시 손님도 적겠다, 마음에 드는 칵테일을 마시려고 했는데 입맛이 싹 가셨다. 잔을 내려놓는 손끝에 미약하게 힘이 들어간다. 그의 말에 침착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그리 되었다. 오랜 세월 해묵은 증오는 터져나오기 보다 깊고 잔잔했다.

“누가 누구를 거둔다고요? 말만큼은 청산유수군요. 그 반지를 끼고? 나를?”

느릿하게 다리를 꼬고 바 스툴에 앉으면 드레스 자락이 다리에 감겨든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난 이곳이 좋은데.”


티엔은 그 유려한 자태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드레스가 그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아쉬울 정도다. 여자든 남자든, 티엔은 그 미모를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아가가 순순히 굽힐 리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좋으면 네가 좋을 대로 하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가까이 다가온 티엔의 낮고 깊은 목소리는 이제 귓가게 닿을 듯 가까웠다.

“이곳이 좋다고? 허면, 그 좋은 이곳에서 무엇을 했느냐?”

“네 아비의 원수를 찾아 칼을 갈았더냐? 아니면 그저 도망자처럼 숨어 살았더냐?”

“아니면, 이 싸구려 술집에서 술이나 퍼 마시며 시간을 죽였더냐?”

카미유가 마시려던 잔을 집어든 티엔은 한 모금을 마신 뒤 인상을 찌푸렸다. 곧 잔을 바닥에 던져 산산조각 내버린다. 요란한 소리에 바의 손님들이 깜짝 놀라 쳐다보지만, 티엔의 존재를 알아본 듯 재빨리 고개를 돌린다.

“이런 걸 마시고 있었다니, 가엾구나.”

“이제는 제대로 된 곳에서, 제대로 된 것을 마실 때가 되지 않았겠느냐?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미 내 것이 되어버린 걸 어쩌겠느냐.”

“도망칠 곳도 없는데 말이다.”


“내가 그걸 당신한테 말해야 될 이유가 없을 텐데.”

이어지는 질문들과 어깨에 닿는 그의 손으로 인한 온기에 매끈한 옷감이 달궈지면 기분이 팍 상하는 듯했다. 그리고 던져지는 잔, 멀리 파편이 튀지는 않았지만 바닥이 쏟아진 칵테일로 엉망이다.

“─하. 내가 언제부터 당신 소유물이었습니까? 난 그에 동의한 적도 없는데.”

“7년 전에는 혈육을 앗아가시더니 이젠 내 작은 즐거움까지 앗아가시려고요.”


티엔이 카미유의 말에 웃음을 터뜨린다. 그 웃음은 진심으로 즐거운 듯,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울려 퍼졌다. 그가 카미유의 의자 뒤에서 앞으로 천천히 걸어와 시야에 들어왔다. 창파오 위의 코트가 우아하게 흔들리며 그 뒤를 따랐다. 티엔은 카미유의 정면에 서서, 턱을 손가락으로 들어올렸다.

“아, 아가. 하늘이 네게 재능을 줄 때 머리는 깜빡 잊으셨나보구나.”

“동의? 생명은 동의를 구하지 않고 태어나는 법. 죽음도 마찬가지지. 그날 너를 살려준 것이 내 뜻이었으니, 그 생명은 이미 내 것이 된 것이다.”

서늘한 붉은 눈동자가 카미유의 얼굴을 탐색하듯 훑었다. 티엔의 손가락이 턱에서 목으로, 목에서 쇄골로 천천히 내려갔다.

“작은 즐거움이라... 참으로 가련하구나. 네가 누렸던 것이 그저 작은 즐거움뿐이었다니.”

“하지만 이제 그런 날들은 끝이다. 칭룽의 일원으로서, 나의 품 안에서 다른 즐거움을 맛볼 차례라 여기노라.”

“너는 이미 나의 관심을 받았으니, 그 자체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거절할 권리는 없다. 네 아비가 내게 발목 잡혔던 것처럼, 너도 그럴 테니.”

“자, 짐을 챙겨라. 지금 당장. 네가 귀중히 여기는 물건이 있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바도, 네가 알던 모든 것도 오늘 밤으로 사라질 테니.”


“······.”

당신은 언제나 이런식이다. 잘 살 것 같으면 내 삶에 끼어들어와서 온통 분탕질을 하고 망가지게 만들어.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가 앉아있던 스툴에서 일어난다. 다리에 엉켰던 드레스 자락이 내려가던 순간, 허벅지에 항상 차고 있던 단도로 뒤돌아 나가려던 그의 목을 노릴 생각이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찔러넣으려던 칼이었다.


티엔의 감각은 언제나 발군이었다. 카미유가 일어서는 순간, 그의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드레스 자락이 미끄러지는 소리, 천이 스치는 소리, 그리고... 숨겨진 무언가가 빠져나오는 미세한 소리까지.

“오호라.”

그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몸을 틀어 카미유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 힘은 강철처럼 단단했고, 그 붉은 눈은 이제 즐거움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곧 카미유의 손목을 비틀어 단도를 떨어뜨렸다.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바 안에 울려 퍼졌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아닌 흥미로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제 주인을 찌르려 들다니, 참으로 용감하구나. 그런 기백, 마음에 든다. 이런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고양이는 더욱 길들이는 재미가 있지.”

티엔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 카미유를 놓아주지 않은 채, 자신의 코트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주사기였다.

“사실 너를 얌전히 따라오게 할 방법은 많았단다. 하지만 ‘선택’을 주고 싶었지. 네가 스스로 걸어나올 기회를... 하지만 역시 이 방법이 더 효율적이겠구나.”

“이것으로 몇 시간 동안 얌전해질 테니, 그동안 우리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데려가마. 깨어나면... 아, 그때부터가 재미있겠구나.”

주사기를 들어올리며 티엔을 미소를 지었다. 빛에 반사된 바늘이 곧 살을 파고 들었다.


“언제부터 당신이 내 주인이었다고······!”

비틀린 손목에서 단도가 떨어지고, 금속 특유의 쨍그랑, 소리가 나면 귀가 쨍했다. 주사기를 꺼내는 순간 잡힌 손목을 빼내려고 했으나, 바늘이 먼저 꽂히면 그의 멱살을 잡았다가, 몇초 후 그대로 무너진다.


티엔의 입술에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바늘이 카미유의 팔에 깊숙이 들어가고, 이내 약물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쓰러지는 카미유를 한 팔로 가볍게 받아냈다. 마치 춤을 추듯 우아한 동작이었다.

“주인과 소유물의 관계는 선언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힘의 차이로 결정되는 법이지.”

“내가 네 부모를 죽였을 때부터 네 운명은 이미 내 손 안에 있었단다. 네가 살아있는 것도, 숨 쉬는 것도, 모두 내 허락 아래 있었지.”

그는 바 안을 둘러보았다.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몇몇 손님들이 놀란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티엔은 카미유가 일했던 바 카운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이 냉랭해졌다.

“이곳의 물건들은 모두 처분하도록. 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기억도 함께 태워버리지. 작은 고양이가 돌아올 곳은 이제 없을 테니.”

그는 천천히 바의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카미유를 안은 팔은 단단해 힘 하나 들이지 않는 듯했다. 문 앞에서 티엔은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진짜 삶이 시작되는 거란다, 아가.”

그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검은 차를 향해 걸어갔다. 뉴 에덴의 네온사인이 그의 얼굴을 물들였다. 차 문이 열리고 티엔은 카미유를 안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만나자꾸나.”

차 문이 닫히고, 검은 차는 조용히 밤거리로 사라졌다.


2
共犯
합의

티엔은 넓은 유리창을 통해 햇빛이 쏟아지는 펜트하우스에서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새벽녘에 데려온 예쁜 고양이를 실컷 잠재운 덕분에 기분이 썩 괜찮았다. 이제 그 발톱 매서웠던 고양이가 드디어 깨어나려는지, 시가에서 연기가 새어나올 때마다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깨어나려나 보구나. 다들 밖으로 나가거라.”

그의 한 마디에 경호원들이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붉은 벨벳 소파 위에는 새하얀 비단 시트가 깔려있었고, 거기에 카미유가 누워있었다. 드레스는 벗겨져 있었고, 대신 티엔이 입혀둔 붉은색 실크 슬립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티엔은 소파 옆 테이블에 위스키를 내려놓고 카미유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무리하지 말거라. 아직 몽롱할 테니.”

“아, 그래. 잊을 뻔했구나.”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은으로 만든 가느다란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티엔은 카미유의 목에 그것을 채웠다. 그는 카미유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는 금발이 마치 비단 같았다.

“이제 진정한 의미의 내 소유물이 된 거란다. 도망치려 들면 이 목걸이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될 테지.”

“뉴 에덴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전망이 마음에 들지 않니? 네가 그토록 미워하던 이 도시가 발 아래 있구나. 이제는 네가 그 위에서 군림하게 되겠지. 물론─,”

나와 함께라면 말이다.


눈 뜨자마자 보이는 게 저 얼굴이라니 운도 지지리도 없다. 실크 슬립의 감촉이 어색했다. 게다가 안 어울리는 붉은색.

“─세레니티는 어떻게 됐어요.”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가 채워지는 목걸이에 눈을 반쯤 찌푸렸다. 겨우 목걸이 하나가 무얼 하겠어. 위험해봤자다. 손으로 잡아채 뜯어버렸다. 가느다란 목걸이는 힘에 툭, 끊어져 내린다. 이런 목줄 같은 거······.

“착각하지 마세요, 내가 증오한 건 뉴에덴이 아니라 당신 뿐이니까.”


티엔은 순간적으로 왼쪽 눈썹을 찡그렸다. 목걸이가 끊어지는 소리는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시가를 바라보다가 불빛이 잦아드는 것을 보며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세레니티가 어쩌고저쩌고... 한심한 질문이구나.”

“네 그 작은 둥지는 이제 재가 되어 흔적도 없겠지. 정말 궁금하다면 직접 가서 확인해 보는 건 어떠냐?”

티엔은 웃음기 없는 미소를 지으며 시가 연기를 뿜어냈다. 깊어지는 실내의 장미 향기. 그는 카미유의 어깨를 짚고 거칠게 밀어 붙였다. 그의 손가락이 카미유의 목을 타고 올라가 턱을 붙잡았다. 힘이 들어가자 붉은 자국이 남았다.

“그래, 당연하지. 너의 그 작은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증오가 나를 얼마나 설레게 하는지 아느냐?”

“하지만 이제는 증오조차 사치란다. 내가 허락하는 감정만 가질 수 있을 테니.”

티엔은 끊어진 목걸이를 집어들었다. 은색 쇠사슬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졌다.

“이런 값싼 장난감으로는 부족하겠구나. 좀 더 강력한 걸로 준비해야겠어.”

“네 발목이나 손목을 묶어두는 게 좋을까? 아니면─,”

“─목에 직접 낙인을 새기는 건 어떠냐? 도망칠 생각도 못하게.”


─재?

“태웠어요? 내가 따라오면 세레니티는 무사할 거라고 하셨으면서? 날 속였어요?”

분노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토해내다가 이내 차갑게 끓어오른 감정을 식혀낸다. 증오를 토해내다보면 저 자신이 더 쉽게 지칠거라는 걸 알았다.

“그 무엇도 싫어요. 당신과 나 사이에 원한도 아닌 다른 낙인 따위. 역겨워서 원.”


티엔은 탁자 위 크리스탈 잔을 들어올렸다. 위스키가 담긴 잔을 흔들며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를 즐기듯 귀 기울였다.

“거짓말이라니, 네가 순순히 따라온다면 세레니티를 보존해주마. 그 말은 했지.”

“하지만 넌 순순히 따라오지 않았잖니? 그래서 그런 거란다, 아가.”

잔을 내려놓은 티엔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화면을 켜자 세레니티의 실시간 영상이 재생되었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카미유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마치 애완동물을 달래듯 부드러운 손길이었지만, 그 아래 숨은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제 와서 원망해봤자 소용없단다. 네 작은 안식처는 이미 재가 되어가고 있으니까.”

“역겹다고? 그래, 그렇게 저항해보거라. 하지만 넌 이미 내 것이야. 네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티엔은 붉은 실크 슬립 위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차가운 손길이 허리를 지나 엉덩이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그는 갑자기 카미유의 목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이 옷도, 네가 숨 쉬는 것도, 모든 게 다 내 허락 하에 있는 거란다.”

“낙인이 싫다고? 그럼 아예 목을 비틀어버릴까? 죽은 인형이 되는 건 어떠하냐.”


그게 그거 아닌가. 지금 나랑 말장난을 하자는 걸까, 이 인간은?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휴대폰 화면까지 보고 나면 불길이 치솟는 불야성 거리의 한 장면이 뇌리에 새겨진다. 잭. 분함에 눈물 한방울이 뚝 떨어지나, 그 이상은 울지 않았다. 이미 어릴 때 지겹도록 울었기에. 목이 잡히면 잠시 큭, 신음하나 노려보는 눈은 여전했다.

“차라리, 그러시죠. 당신, 손에 놀아나느니─”

하. 이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져나온다.


티엔은 자신의 목을 조이는 손길에도 불구하고 저항하는 카미유의 모습을 보며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불빛 아래서 차갑게 번득였다.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본 티엔은 엄지손가락으로 그 자리를 쓸어내렸다.

“아, 이런. 눈물까지 흘리는구나. 감동적이지.”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울렸지만, 그 안에 담긴 조롱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공기를 갈랐다. 티엔은 손에 힘을 풀고 카미유의 목에서 천천히 손을 떼었다. 대신 그의 턱을 움켜쥐어 강제로 자신을 쳐다보게 했다.

“차라리 죽겠다? 그런 말은 진지하게 하는 게 아니란다. 아가.”

“죽음은 너무 쉬운 탈출구지. 네가 그렇게 쉽게 빠져나가게 두진 않을 거란다.”

티엔은 카미유의 팔을 거칠게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의 힘에 카미유는 순간 비틀거렸다. 티엔은 그를 창가로 끌고 갔다. 뉴 에덴의 화려한 야경이 발 아래 펼쳐졌다. 도시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으로 물들어 있었고, 멀리서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티엔은 카미유의 어깨를 붙잡아 창문에 바짝 붙였다. 차가운 유리가 피부에 닿았을 것이다.

“보이느냐? 네가 나를 거부할 때마다, 네가 사랑하는 것들이 하나씩 사라질 거란다.”

“잭을 걱정하니? 그럼 그도 곧 내 손아귀에 들어올 테지.”

“넌 이미 내 손에 놀아나고 있단다. 그걸 모르는 건 너뿐이지.”

그는 카미유를 창가에서 떼어내 소파로 다시 밀쳤다. 커다란 손이 카미유의 가슴을 짓눌렀다. 티엔은 탁자 위 은제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약물이 들어 있는 주사기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는 그중 하나를 집어들어 바늘 끝을 튕겼다. 투명한 액체가 반짝였다.

“항복하거라. 그게 네 유일한 살길이니.”

“선택의 시간이란다. 복종이냐, 고통이냐.”

그는 주사기를 들고 천천히 카미유에게 다가갔다. 바늘 끝에서 한 방울의 액체가 떨어져 카미유의 맨살에 닿았다. 티엔의 손가락이 카미유의 팔뚝을 타고 올라갔다. 정맥이 지나가는 부분을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이건 내가 특별히 부탁해 개발한 약이란다. 한 번 맛보면 네 의지라는 것은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릴 테지.”

“몸은 불에 타는 듯 뜨거워지고, 정신은 안개 속에 갇히게 되지. 하지만 고통 속에서도 쾌감을 느끼게 될 거란다. 모순적이지 않니?”

“물론, 네가 순순히 내 말을 따른다면··· 이런 방법을 쓸 필요는 없겠지.”

그는 주사기를 내려놓고 카미유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감아 쥐었다. 금빛 머리카락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난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란다. 네가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줄 수 있지. 하지만 내 인내심에도 한계는 있는 법.”

“자, 이제 다시 묻겠다. 순순히 내 곁에 머물겠느냐, 아니면 고통의 길을 선택하겠느냐?”

“선택은 네 몫이지만, 어느 쪽이든 실은 결과는 같단다. 넌 결국 내 것이 될 테니.”


여기에서 거절하면 약을 맞고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걷게 될 테다. 그걸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차라리 얌전한 개인 척을 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 같은 인형은 죽는 것보다 못하다. 입술을 꾹 물었다가 가까워진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 좋아요. 내 의지로 곁에 머물도록 하죠.”

“한 가지만 묻겠어요. ··· 왜 나였는데요?”


카미유의 대답에 티엔의 눈썹이 미묘하게 치켜올라갔다. 희미하게 웃음기가 어린 눈빛으로 카미유를 훑어보던 티엔은 손에 들고 있던 주사기를 탁자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차가운 금속성의 소리가 펜트하우스의 적막을 깨뜨렸다.

“현명한 선택이로구나, 아가. 쓸데없는 고통은 피하는 게 상책이지.”

“왜 너였냐고 물었느냐?”

담배에 불을 붙여 빨아들인 티엔은 연기를 천천히 내뿜으며 고개를 돌렸다. 조명 아래서 그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져 더욱 이국적으로 보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

“네 아비는 내 계획에 방해가 되었지. 청렴결백한 경찰청장 나으리께서는, 내가 이 도시를 가지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셨거든. 그래서··· 치워버렸단다.”

“하지만 너는 달랐지. 네 아비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단다.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흥미로웠다고 할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오만함과 호기심,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복잡한 빛을 띠고 있었다.

“어쩌면... 네 안에 숨겨진 그 무언가를 꺼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네가 가진 증오, 분노, 슬픔... 그 모든 감정들을 내 손으로 직접 빚어보고 싶었는지도.”

“어쩌면─,”

티엔은 다시 입을 열었지만, 말을 끝맺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카미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지금은 그냥 내 곁에 있으면 된단다. 아가.”

티엔은 카미유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은 차가웠지만, 그의 눈빛은 뜨거웠다. 그렇게 어쩌면 이해관계가 일치해서, 혹은 제각각의 이유로, 기묘한 양육관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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