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共犯양육⌵
티엔은 처음 며칠 동안 카미유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마치 새로운 애완동물을 데려온 주인처럼, 그는 카미유의 모든 행동을 관찰했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미묘한 흥미로 빛나고 있었다. 카미유에게 주어진 방은 넓고 호화로운 방이었다. 킹사이즈 침대와 대리석으로 된 욕실, 그리고 뉴 에덴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하지만 방 안에는 창문이 없었다. 대신 벽면 전체가 일방통행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고 안에서만 밖을 볼 수 있었다. 워크인 클로젯에는 온갖 고가의 의상들이 가득했다. 정장부터 캐주얼한 옷까지, 심지어 바에서 입던 것과 비슷한 드레스까지 있었다.
사흘 째 되는 날, 티엔은 아침 식사를 함께하자며 카미유를 불렀다. 당일, 티엔은 칭룽의 구조, 사업, 앞으로 카미유가 맡을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난 네가 가진 재능을 낭비하고 싶지 않단다. 바에서 노래하고 정보를 모으던 그 능력,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지.”
나흘 째에는 카미유를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갔다. 벽면에는 세계 지도가 걸려있고, 책상 위에는 오래된 체스판이 놓여 있었다. 티엔은 서류 더미를 카미유 앞으로 밀었다.
“이게 칭룽의 조직도와 사업 내역이다. 읽어보거라. 네가 곧 관리하게 될 일이니 숙지해두는 게 좋을 테지.”
다섯째 날, 티엔은 아침 일찍 카미유를 깨웠다. 오전에는 줄곧 단장을, 오후에 티엔은 카미유를 데리고 뉴 에덴의 여러 장소를 방문했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공포와 존경이 뒤섞인 표정으로 몸을 낮추었다. 티엔은 그 모습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항구 근처의 창고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물류창고였지만, 내부에는 칭룽의 주요 무기와 약물이 보관되어 있었다.
“여기가 우리 사업의 심장부란다. 모든 것이 이곳을 통해 흘러가지.”
“네 아버지가 그토록 없애려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란다. 아이러니하지 않느냐? 이제 네가 이걸 관리하게 될 테니.”
여섯째 날, 티엔은 카미유를 자신의 사무실로 다시 불렀다. 소개 받은 것은 시장인 윌리엄 슈테판이었다. 파트너라면서. 마침내 일주일이 되던 날 오후에는 불쑥 방에 오더니 검은 상자를 내밀었다.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있단다. 저녁에 나와 함께 파티에 참석하게 될 거야. 네가 공식적으로 칭룽의 일원으로 소개될 자리지. 준비해두거라.”
“이건 선물이란다.”
상자를 열자 안에는 고급스러운 다이아몬드 커프스와 넥타이핀이 있었다. 그 위에는 작은 메모가 놓여있었다. 이제 너는 내 것이다.
“마음에 드느냐? 왕의 곁에 있는 왕자는 그에 걸맞게 빛나야 하니.”
티엔의 얼굴에는 이상하게 부드러운 기색이 감돌았다.
가만 그 선물을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커프스와 핀을 빼낸다. 어쩐지 인형놀이에 지나지 않는 거 같단 생각이 들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니 기다려야한다. 그가 누그러진 기색을 보이지만, 실은 아직 멀었을 테지.
“피도 안 이어진 ‘자식’을 ‘왕자’라 부르시는군요. 이런 후계자 놀음이 좋으십니까?”
“내가 누구인지 잊으신 것 같지는 않은데······.”
티엔의 눈이 카미유의 조소에 반응하여 위험하게 빛났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지만, 그 미소는 따듯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느릿하게 카미유에게 다가가며 그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어올렸다.
“혈연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가족이란 개념에 집착하는 모양이지? 그래서 네 부모의 죽음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인가?”
“가족이란 건 그저 이용하고 버리는 도구에 불과하지. 내가 ‘왕자’라고 부르는 것은 네가 나의 확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혈연보다 더 강한 연결고리지. 선택받은 자란 의미의.”
티엔은 대형 옷장을 열었다. 그는 여러 의상을 꺼내 침대 위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은 꼼꼼했고, 각 의상을 선택할 때마다 카미유의 반응을 살폈다.
“이제 파티 준비를 하자꾸나. 네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줄 시간이란다.”
“이것이 좋겠다. 칭룽의 색인 붉은색과 검은색이 주된 색상이지.”
티엔이 선택한 의상은 놀랍게도 남성복이 아니었다. 검은 새틴 바탕에 붉은 용 문양이 수놓아진 중국식 치파오였다. 옷은 목까지 올라오는 차이나 칼라에 옆트임이 있어 걸을 때마다 다리가 드러나는 디자인이었다. 그와 함께 검은 하이힐과 붉은 진주 귀걸이, 손목에 감을 가느다란 금팔찌도 준비되어 있었다.
“네 아름다움은 무기가 될 수 있다. 오늘 밤 모두가 널 탐낼 테지만, 넌 내 것이란다. 그들에게 그 사실을 각인시켜주려무나.”
“시간이 없구나. 빨리 준비하거라. 한 시간 후에 다시 오마.”
여기까지 와서 이런 옷을 입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하, 전엔 그리 조롱해놓고? 좀 잠잠하다 싶으면 나오는 그의 인성에 꾹 참았다. 반박하려다가도 냉큼 나가버려 문이 닫히면 허, 황당한 웃음만 터트렸다.
정확히 한 시간 뒤, 그가 돌아오면 어쨌거나, 그가 골라준 옷으로 갈아입긴 했다. 어색한 모양새는 아니었다. 치파오의 민소매 탓에 드러난 팔은 조각처럼 잔근육이 붙어있었고, 힐을 신으니 티엔과의 키차이도 훨씬 줄어 멀대 같아졌지만. 예쁘장한 얼굴 덕에 모습만 보면 그리 괴리감이 느껴지는 꼴은 아니었다.
“만족하세요?”
티엔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붉은 눈동자가 카미유의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훑었다.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티엔은 천천히 카미유 주위를 돌며 그의 모습을 감상했다. 그의 발걸음은 포식자가 먹잇감을 둘러보는 것처럼 느릿했다. 마침내 카미유 앞에 멈춰 서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만족, 그 말로는 부족하구나.”
“완벽하다. 이토록 어울릴 줄이야.”
티엔은 뒤로 물러나 자신의 모습을 정돈했다. 그는 오늘 특별히 깊은 붉은색의 수트를 입고 있었다. 가슴팍에는 금색 용 브로치가 빛났고, 머리는 평소보다 더 단정하게 뒤로 넘겨 한 가닥으로 땋아 내렸다.
“오늘 밤은 특별하단다. 네가 공식적으로 내 오른팔이 되는 날이지. 윌리엄도 있을 테고, 뉴 에덴의 모든 유력 인사들이 참석한다.”
“그리고 네 아버지의 옛 동료들도 몇몇 올 것이다. 경찰 고위직들 말이다. 그들이 너를 알아볼지, 아니면 이 화려한 가면에 속을지 궁금하구나.”
티엔은 작은 보석함을 꺼내 열었다. 안에는 루비가 박힌 목걸이가 있었다. 그는 카미유 뒤로 돌아가 그 목걸이를 그의 목에 둘렀다. 목걸이를 채우는 티엔의 손가락이 카미유의 목덜미에 살짝 닿았다. 그 순간 그의 호흡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걸 차고 있으면 누구도 너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란다.”
“─이 도시가 어떻게 변할지 기대되는구나. 네 아버지가 지키려 했던 그 도시가 내 손아귀에서 어떻게 변해갈지.”
티엔은 카미유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를 거울 앞으로 인도했다.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은 기묘하게 어울렸다.
“보아라. 우리 둘이 함께 있으니 얼마나 완벽한지. 마치 운명처럼.”
“차라리 세레니티에서 노래할 때가 나았죠.”
냉랭한 눈으로 그를 보다가 목에 채워지는 목걸이에 기묘한 표정을 했다. 첫날에도 꾸준히 내게 목걸이를 채우려 했던 그다. 대체 이딴 게 뭐라고. 거울 속 모습을 보면 더 그러했다. 그의 손길대로 꾸며져 있는 제 모습이 역겹기 그지 없었다.
“···운명이 아니라 지독한 악연에 가까운 것을.”
거울 속에서 얽히던 시선을 먼저 감아버린 건 이쪽이었다.
티엔은 카미유의 냉랭한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붉은 동공이 위험스럽게 수축되었다가 이내 풀어졌다. 그는 거울 속에서 카미유와의 시선이 끊어지자 천천히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손아귀에 힘이 실려 카미유의 피부가 하얗게 변할 정도였다.
“악연이라··· 세상 모든 관계는 결국 이용당하거나 이용하는 것뿐이란다. 너와 나도 마찬가지지.”
“시간이 됐구나, 파티장으로 가자.”
2共犯파티⌵
티엔은 파티장 안에 있는 다양한 인물들을 카미유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명확했다. 그는 카미유를 ‘내 오른팔’이라고 소개했고, 그 말에 사람들의 눈에 존경과 두려움이 섞인 빛이 어렸다. 티엔이 사람들과 대화하는 동안, 그의 손은 계속해서 카미유의 몸에 머물러 있었다. 때로는 허리에, 때로는 어깨에, 때로는 팔에. 그것은 마치 자신의 영토를 표시하는 것 같았다.
온갖 기성 향수 향이 뒤섞여서 어지러웠다. 바에서 일할 때보다 더 많은 향을 맡은 것 같았다. 그만한 적의도, 흥미도. 역겨운 것들만 모아놓은 장소였다. 그것이 뉴 에덴의 고위층이라는 것이 치가 떨렸다. 그 원인이 된 장본인이 제 곁에서 속삭이고 있다는 것도. 다만 눈은 날카롭게 벼려도 입꼬리는 올렸다.
“즐기고 있느냐.”
“피곤하네요.”
“귀여운 것. 이제 시작인데.”
파티장 한쪽에서 타악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티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카미유를 데리고 그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길을 내주었다. 티엔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고, 그 주변으로 공포와 존경이 뒤섞인 기운이 맴돌았다. 무대 위에는 중국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악단이 있었다. 그들은 티엔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티엔은 그들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그 순간 음악이 바뀌었다.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위험한 느낌이 도는 선율이 흘러나왔다.
티엔은 카미유의 손을 잡고 춤추는 공간으로 이끌었다. 그의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 담긴 의도는 명확했다.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그는 카미유를 자신의 품에 끌어당겼다. 그의 움직임은 우아했고, 그의 붉은 눈동자가 카미유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카미유를 리드하며 공간을 가로질렀다. 그의 손길은 카미유의 몸에 흔적을 남기는 듯 단단했다.
음악이 고조되는 순간, 티엔은 카미유를 휘돌렸다. 그의 움직임은 예측할 수 없었고, 그 속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듯했다. 그는 카미유를 다시 자신의 품에 끌어당겼다. 그의 얼굴이 카미유의 얼굴에 가까워졌다. 그의 눈빛에는 도전과 욕망이 뒤섞여 있었다.
춤이 멎은 것은 파티장의 조명이 어두워지면서다. 스포트라이트가 무대를 향했다. 윌리엄이 무대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얼굴에는 정치인다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뉴 에덴의 발전을 위한 이 자리에 특별한 손님들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저 늙은 개는 겁에 질려 있구나. 백사와 내가 여기서 싸움을 벌이면 그의 정치 생명도 끝장날 테니까. 꽤 재미있는 상황이지 않니?”
힐끔, 백색의 인영에 언뜻 시선을 주던 티엔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났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의 통제 하에 있다는 듯한 여유로움을 보였다. 윌리엄의 연설이 계속되는 가운데, 티엔은 카미유의 허리를 감싸고 무대 쪽으로 이끌었다. 그의 걸음은 느리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가 움직이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길을 열어주었다.
“곧 내 차례가 올 텐데, 그 전에 한 가지 알아둘 것이 있단다.”
“어둡다 한들 아래는 다 보이니 도망칠 생각은 말거라.”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서는 경고의 의미가 선명했다. 윌리엄의 연설이 끝나갈 무렵, 그는 티엔을 무대로 초대했다. 티엔은 한숨을 내쉬더니 카미유에게서 손을 떼었다.
“즐거운 시간이 다 끝나버렸군. 자, 이제 정치 놀음에 잠시 참여해야겠다.”
“얌전히 있으렴. 보이지 않으면 찾으러 내려올 테니.”
티엔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무대에 오르며 윌리엄과 악수했다. 두 사람 모두 웃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윌리엄이 마이크를 넘기자 티엔이 청중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 목소리가 파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부드럽고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말투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뉴 에덴의 번영을 위한 이 모임에서 제가 작은 역할을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우리 도시는 지난 몇 년간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변화가 항상 순탄하진 않았죠. 하지만 우리는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찾는 법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요.”
“뉴 에덴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시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죠.”
“오늘 저는 여러분께 특별한 인물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 곁에 새롭게 합류한... 매우 소중한 사람을.”
“블랑샤르 가의 마지막 피, 카미유 블랑샤르입니다.”
티엔의 손짓에 스포트라이트 하나가 카미유를 향해 움직였다. 갑작스러운 조명에 파티장의 모든 이들이 카미유를 주목했다. 티엔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승리의 미소였다.
“많은 분들이 블랑샤르 가문을 기억하실 겁니다. 7년 전 불의의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하지만 이제 그 아들이 제 곁에서 뉴 에덴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것입니다. 카미유는 이제 저와 함께합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바라봐야 하죠. 카미유와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알립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뉴 에덴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과도 같을 것입니다.”
“자, 이리 오거라, 아가. 모두에게 네 모습을 보여주렴.”
그는 손짓으로 카미유를 무대로 초대했다. 그의 눈빛에는 명령이 담겨 있었다.
‘불의의 사고?’ 그의 집에서 나온 가식적인 새빨간 거짓말에 여유롭게 웃지 못하고 끝끝내 표정이 굳었다. 내가 이딴 소리를 들으려고 이 옷을 입고, 오늘 저녁 내내 당신 곁에 서있었던가.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뜨겁게 느껴졌다. 드러난 팔이 그 열기에 데워지기 시작한다. 다만 뜨겁지는 않은 것이, 제 속에서 난 열불이 더 뜨거웠다. 한 발, 움직이면 힐의 굽소리가 울리나 그게 끝이었다. 당신이 망신을 당하는 꼴을 보는 것도 어쩌면 사사로운 제 복수일 거 같아서.
“이런, 아직도 수줍음을 타는구나.”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스포트라이트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이니.”
티엔은 무대에서 내려와 카미유에게 다가갔다. 그의 걸음걸이는 여유로웠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는 카미유의 바로 앞에 서서 낮게 속삭였다.
“웃어라, 아가. 네 분노는 너무 쉽게 읽히는구나.”
티엔은 다시 목소리를 높여 청중을 향해 말했다.
“오늘 저녁 특별한 공연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아이가 직접 노래를 부른다고 하니, 기특하지 않습니까.”
“자, 아가. 모두가 기다리고 있단다. 네 목소리로 이 지루한 파티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렴.”
당신은 정말 최악의 인간이다. 조금의 동요도 없이 내려와서 제 옆에 당당하게 선 채로 모두의 시선을 장악하는 게 그렇게 아니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신의 말이 맞았다. 이렇게 분노가 눈에 보일 정도여서야 칼을 겨누기도 전에 들키고 만다. 7년의 분노를 그리 날릴 수는 없었으니. 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놓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Lascia ch'io pianga, La dura sorte─”
차분하게 이어지는 노래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나를 울게하소서. 소프라노 음역대의 아리아지만 미성이 무난하게 이어간다.
티엔의 눈이 번뜩였다. 카미유의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파티장의 모든 대화가 일순간에 멈췄다. 그는 카미유의 옆에서 한 걸음 물러나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티엔은 카미유의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자신의 손목시계를 슬쩍 확인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만족스러운 듯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인생이란 참으로 흥미롭지 않느냐.”
곡이 끝날 무렵, 그가 카미유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 부모의 피가 네 목소리에 깃들어 있구나. 네 아버지의 단호함과 어머니의 우아함이. 그들도 이렇게 네가 빛나는 모습을 자랑스러워했을 테지.”
“살아있었다면 말이다.”
파티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에는 티엔의 갑작스러운 발표에 당혹감이 감돌았지만, 이제는 카미유의 노래에 매료된 듯했다. 사람들은 서로 감탄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집중했기에 그가 무슨 표정으로 듣고 있었는지는 몰랐다. 그저, 눈을 감으면 아직도 세레니티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만, 그 환상에서 끌어내린 건 잔혹한 당신의 속삭임이다. 짧은 아리아가 끝나면 박수갈채가 쏟아지나 기쁘지 않았다.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이내 회장을 벗어난다. 힐과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균일하다가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급해진다.
도망치듯 나온 회장에서 결국 발이 닿는대로, 살이 까져라 걷다보면 구두 끝에 재가 채였다. ─세레니티. 티엔의 명으로 불타서 건물의 뼈대만 남은 그 자리였다. 새카맣게 그을린 간판은 불이 들어올 것 같지도 않았다.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모습이다. 자신의 지난 7년까지도 함께. 허탈한 웃음을 뱉으면 후두둑, 눈물이 떨어진다. 하.
난 결국 무얼 위해 지난 일주일을 그의 곁에서 비위를 맞췄는가. 카미유 블랑샤르. 그의 입에서 나온 제 이름이 그리도 모욕적일 줄이야.
뒤를 쫓아 나온 티엔은 세레니티의 잔해 앞에 선 카미유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천천히 걸어와 카미유의 바로 뒤에 섰다. 자갈을 밟는 발소리가 조용한 밤공기를 가르며 울렸다. 그는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붉은 불빛이 그의 얼굴을 순간적으로 밝혔다가 사라졌다.
“세레니티, 평온함이라. 이름값을 못하는 곳이었지. 정보가 넘쳐나고, 비밀이 거래되고, 음모가 꽃피는 곳에 무슨 평온함이란 말이냐.”
“네가 이곳을 그리워한다면, 더 좋은 것을 지어주마. 네 목소리에 어울리는 무대를. 세레니티보다 백배는 더 화려한 곳을.”
티엔은 카미유의 옆으로 걸어와 함께 불타버린 세레니티를 바라보았다. 그의 키 높은 실루엣이 달빛 아래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제 돌아가자꾸나, 아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이미 재가 되었으니.”
“네 과거는 날아가 버렸지만, 네 미래는 내가 쥐고 있다. 내 손 안에서 피어날 미래를.”
“이 땅에서 너는 이제 블랑샤르 가의 마지막 후손이자, 나의 소유물이다. 그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었지. 이제 돌아갈 곳은 나밖에 없단다.”
티엔은 코트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세레니티의 열쇠였다. 그는 그것을 카미유에게 건넸다.
“잭에게서 받았단다. 그는 살아있어. 하지만 네가 그를 찾아간다면, 그는 살아있지 못할 거다.”
“─이제 이걸 주어서 무얼 하시려고요. 이미 이 열쇠가 필요한 곳은 영영 사라졌는데.”
헛웃음을 터트린다. 뺨을 스치는 손에서 아버지의 반지를 보면 치가 떨리는지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여전히 눈을 감으면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곤 했다. 카미유가 아닌, 그만이 부르던, 소중한······. 침묵을 지키다가 열쇠를 받아들었다.
“과거를 놓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 무게에 짓눌리지. 열쇠는 단지 상징이란다. 네가 아직도 무언가를 붙잡고 있다는 증거.”
그는 천천히 카미유의 주위를 돌았다. 긴 코트 자락이 바닥을 쓸며 바스락거렸다. 달빛 아래 그의 남색 머리카락이 신비롭게 빛났다.
“롄첸.”
티엔의 입에서 나온 중국어 이름은 공기 중에 얼어붙은 듯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이름을 부르는 방식에는 어떤 소유욕이 담겨 있었다.
“내가 그의 목숨을 끊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었단다. 롄첸을 해치지 말아주세요.”
“그걸 알면서도 네가 도망친 7년 동안, 나는 네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블랑샤르의 아들’이라 불렀지.”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구나.”
티엔의 손이 카미유의 어깨에 올라갔다. 그의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그 무게감은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을 상기시켰다.
“자, 이제 가야하지 않겠느냐. 우리의 집으로.”
“······.”
그 호칭에 잠시 멈칫했다. 그게 당신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거잖아.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물으려다 그 경위마저 불손하여 이를 꽉 물었다가 이내 풀었다. 열쇠를 쥔 손이 힘을 주어 떨리다가도 감정 정리를 마친듯 고요해졌다.
“우리? 당신의 집이겠죠.”
일주일간 그곳에서 지냈지만, 여전히 집이라고 부를 정도로 익숙해진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타향 같은 집이었다. 내가 머물 곳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
그의 붉은 눈동자가 카미유의 얼굴을 탐색했다. 달빛이 그의 긴 속눈썹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티엔의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갔다.
“롄첸이라고 부르면 싫으냐? 그 이름이 네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는 게?”
“그래, 맞다. 내 집이지. 하지만 넌 이제 그곳에서 살아야 한단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거라. 세레니티도, 잭도 더 이상 너를 지켜줄 수 없으니.”
“이건 네 운명이란다. 네가 도망치려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 뿐이야.”
그는 카미유의 어깨를 붙잡은 채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은 우아했지만, 손아귀의 힘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다.
“그건 내 아버지만이 부르던 애칭이니, 당신이 그 이름을 부를 자격은 없죠.”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의 손아귀 힘에 이끌려서 결국 재만 남은 그 폐허를 벗어난다. 준비된 차에 오르면 내내 식어있던 몸이 히터 바람에 데워지는 게 느껴진다. 운전을 맡은 수행원, 티엔도 말이 없으니 차 안은 침묵이었다.
티엔은 카미유의 말에 왼쪽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아, 그런가. 그래서 더욱 부르고 싶어지는구나. 그의 긴 속눈썹 사이로 위험한 빛이 스쳤다.
“자격이라. ─자격은 내가 만들어내는 거란다. 네 아비의 목숨을 끊은 순간부터, 그의 모든 것은 내 것이 되었지.”
“네가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더욱 부르고 싶어지는구나. 그래, 네 아비만이 부르던 그 이름으로.”
“롄첸.”
“··· 탐낼 것도 많으시지. 하다못해 그 이름에 얽힌 추억까지 앗아가려 하시다니.”
어차피 당신이 그 이름으로 불러봤자 난 답하지 않을 테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며, 하물며 혈육도 아닌 것을. 그와 거리를 두고 앉아서 불야성의 거리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본다. 네온 라이트가 눈이 시리도록 부셨다.
“추억이라······. 그래. 네 아비의 것은 전부 내 것이 되어야 하지.”
“가진 것을 전부 앗아가는 게 내 취미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의 반지도, 그의 아들도, 그의 마지막 말도 모조리 가져왔단다.”
그 말을 뱉은 그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온사인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번갈아가며 물들였다. 푸른빛, 붉은빛, 노란빛. 티엔은 왼손으로 담배를 꺼내들었다. 오른손 중지의 반지가 네온사인 아래서 반짝였다.
“뭐가 되었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반항하렴. 네가 거부할수록 더욱 부르고 싶어지니.”
펜트하우스로 돌아가는 차의 엔진음에 반쯤 가려진 그의 목소리에는 달콤한 독기가 서려 있었다. 마치 뱀이 혀를 낼름거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