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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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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d?
Injury

일주일을 조금 더 넘긴, 그 다음주 수요일 쯤에서야 모습을 보이긴 했다. 그마저도 본인이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닌 모양이다. 역시나 니케의 손에 질질 끌려서 들어왔다. 한쪽 어깨가 빠진 건지 덜렁덜렁한 상태로.

“그냥 맞추면 된다니까 뭘─.......”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잔소리를 쏟아내는 그녀의 태도에 눈을 데굴 굴리다가 능력으로 음소거 시켜버렸다. 그에 니케가 더 날뛰는 거 같았지만 아무렴... 귀는 덜 아팠다.

그 꼴을 지켜보던 H는,


책상 위에 쌓인 서류 뭉치에서 간신히 고개를 든 H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검지로 꾹 눌렀다. 일주일 하고도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녀석이 하필이면 가장 정신없는 수요일 오후에, 그것도 저런 요란한 방식으로 등장할 줄이야. 탕비실에서 마지막 남은 사탕을 찾아 입에 넣으려던 찰나였다. 단맛으로라도 이 피로를 잊고 싶었는데.

의무실 문이 거의 부서질 듯 열리고, 니케가 씩씩거리며 들어섰다. 그녀의 손에는, 아니, 거의 어깨에 매달리다시피 한 데클란이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녀석의 검은색 터틀넥은 한쪽 어깨 부분이 축 늘어져 보기 흉하게 흘러내렸고, 그 아래로는 누가 봐도 정상적인 위치를 벗어난 어깨뼈의 형태가 도드라져 보였다. 그럼에도 데클란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무심했다. 오히려 니케의 잔소리가 지겹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였다.

결국 니케의 우렁찬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입만 뻐끔거리며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으로 보아, 데클란이 또 능력으로 음소거를 시전한 모양이었다. 저 망할 자식이. H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흰 가운 자락이 힘없이 흔들렸다. 은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검은 눈동자는 피로와 짜증으로 흐릿했지만, 이내 익숙한 상황이라는 듯 체념의 빛을 띠었다.

“야, 니케. 일단 그놈 좀 내려놓고, 목소리부터 어떻게 해봐라. 아주 그냥 시장통이네.”

H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잠겨 있었고, 까칠함이 한껏 묻어났다. 그는 팔짱을 끼고 데클란을 쏘아보았다.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아 아주 잠깐, 아주 잠깐 걱정했던 자신이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 저 녀석은 걱정 같은 걸 해줄 필요가 없는 종족이었다. 애초에 인간이 맞긴 한 건가.

“그리고 너, 데클란. 어깨가 그 꼴인데도 아주 태평하시네? 또 어디서 뭘 하고 와서 이꼴이야?”

“몸은 소모품이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래, 이 답답한 놈아.”

H는 혀를 차며 데클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상태는 더 심각했다. 어깨뿐만 아니라 팔뚝 여기저기에도 시퍼런 멍과 자잘한 생채기가 가득했다. 그럼에도 고통을 참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데클란은 미동조차 없었다. H는 일단 니케의 음소거부터 풀어주기로 마음먹고, 가볍게 풀라는 듯 손짓했다.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의 데클란이 능력을 풀자, 그녀의 입에서 억눌렸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 자식이 진짜! 헤베, 얘 좀 어떻게 해봐! 내가 진짜, 어휴!”

니케는 씩씩거리며 데클란의 등짝을 한 대 후려쳤고, 데클란은 그제야 작게 신음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제야 좀 인간 같네, 인마. H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진료용 침대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거기 눕히기나 해라. 어깨부터 봐야 하니까.”

“잔소리는 치료 끝나고 할 테니, 각오하고. 아주 그냥 오늘 제대로 날 잡았다, 너.”


그마저도 굳이 싶어서 버티던걸 냅다 침대 위로 배송이라도 하듯 내려놓고 치료 받으라며 엄하게 말하고 나가버리는 니케를 흘끗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냥 어깨 빠진 거 가지고 호들갑이라니까. 이건 끼우면 돼.”

잔소리 각오까지 해야 될 일인가? 가뜩이나 피곤해보이는 낯에 뭔가 더 해주고 싶지 않아서 올려다보다가 슬쩍 일어나려했건만 손에 제지당하면 얌전히 늘어졌다.

“나름의 의학적 소견이거든?”

무심하게 뱉는 것이 뺀질나게 드나들다가 일만 생기면 조용히 생사 모르게 사라지는 사람다웠다.


침대에 억지로 눕혀진 주제에 뭐가 그리 당당한지, 태평한 낯짝으로 어깨가 어쩌고 하는 소리를 지껄이는 꼴이 퍽이나 아니꼽다.

“인마. 그냥 어깨 빠진 거? 네 눈에는 이게 그냥 어깨 빠진 걸로 보이냐? 아주 용감무쌍하셔서 좋겠네.”

데클란이 슬쩍 몸을 일으키려 하자, H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멀쩡한 쪽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제법 힘이 실린 손길이었다.

“얌전히 누워 있어라. 네 그 잘난 의학적 소견인지 뭔지는 나중에 듣고.”

“지금은 내가 의사고, 넌 환자야. 아니, 환자라기엔 너무 멀쩡해 보이는 게 문제지만.”

H는 데클란의 늘어진 터틀넥 위로 드러난 어깨를 살폈다. 기형적으로 불거진 뼈의 형태, 그리고 그 주변으로 퍼렇게 번지기 시작한 멍. 보기만 해도 아찔한 광경이었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조심스럽게 데클란의 팔을 붙잡았다. 보기보다 차고 단단한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의 손길은 투박한 말투와는 달리 섬세했다. 그는 데클란의 어깨 관절 주변을 천천히 매만지며 상태를 확인했다.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데클란의 미세한 근육 떨림이 느껴졌다.

“가만히 있어 봐. 뼈만 어긋난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힘줄이나 근육이 같이 상했을 가능성도 무시 못 해.”

“너 같은 놈들이 꼭 나중에 ‘그때 제대로 치료받을걸’ 하고 후회한다니까.”

그의 시선은 날카롭게 데클란의 어깨에 고정되어 있었다. 난잡하게 흘러내린 옅은 분홍색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그의 이마를 간질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료실의 형광등 불빛이 그의 흰 가운과 창백한 피부를 더욱 도드라지게 비췄다. 입에 물고 있던 막대사탕은 어느새 녹아 없어졌는지, 입 안이 텁텁했다. 새로 사탕을 꺼낼 기력조차 없는 듯했다.

“…그리고 말이다, 인마. 꼭 이렇게 한꺼번에 몰아서 아프냐? 내가 전용 주치의라도 되는 줄 아나 봐.”

“안 그래도 요즘 일 많아서 죽을 맛인데, 아주 그냥 기름을 붓는구나, 기름을 부어.”

그의 말투에는 진심 어린 짜증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섞여 있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데클란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피곤함에 짓눌려 희미하게 떨리는 눈꺼풀 아래, 그의 검은 눈동자는 여전히 데클란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듯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어쩌면, 아주 약간의 걱정스러운 빛도 숨어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H 자신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일단 엑스레이부터 찍자. 그래야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잘난 의학적 소견은, 치료 다 끝나고 내가 커피라도 한 잔 얻어 마실 때나 실컷 떠들어라.”

“지금은 좀 닥치고 얌전히 협조해, 알겠냐?”


한숨을 쉬고는 잡혀오긴 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협조하는 기색이긴 했다. 얌전히 엑스레이도 찍고, 촉진하는 동안에도 찍소리 않고 가만 있었다. 물론 그 태평함이 어딜가는 건 아니니까. 화면에 띄워진 사진을 보더니 정확한 근육의 이름을 들어 객관적으로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구 직업병은 어쩔 수 없는 모양. 사진을 찍어보자고 권한 H보다도 더 자세한 분석이었다. 당연하겠지만.

“... 음.”

일단 본인이 보기에도 생각보다 큰 부상이었던 모양이다. 분석하고 나면 조금 조용해졌다.


H는 제 앞에 놓인 엑스레이 사진과, 그 사진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데클란의 옆모습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마를 덮은 검은 반곱슬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난 데클란의 백색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냥 어깨 빠진 거’라며 태평한 소리를 지껄이던 녀석이, 막상 제 뼈 상태를 확인하고 나니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그 심각함이라는 것이 일반인의 기준과는 한참 동떨어져 보이긴 했지만.

H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섰다. 데클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정확한 의학 용어들과 냉정한 분석은, 그가 과거 군의관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켰다. 평소에는 능글맞은 농담이나 던지며 사람 속을 긁어대는 주제에, 이런 상황에서는 또 전문가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이 퍽이나 아이러니했다. 어쩌면 저런 이중적인 모습 때문에 더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몰랐다.

한참 동안 엑스레이 사진을 분석하던 데클란이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 평소라면 한두 마디쯤 더 깐족거렸을 법도 한데, 예상외로 조용했다. H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데클란을 관찰했다. 저 녀석도 자기 몸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이제야 제대로 인지한 모양이었다. 하긴, 저 정도면 일반인은 고통에 데굴데굴 굴렀을 터였다. 그걸 참고 여기까지 끌려온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었다.

H는 짧게 혀를 차고는 기대고 있던 벽에서 몸을 떼었다. 그의 흰 가운 자락이 바닥에 끌릴 듯 말 듯 나부꼈다. 피로가 덕지덕지 쌓인 어깨는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여기서 더 지체할 수는 없었다. 그는 데클란이 누워 있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섰다. 얇고 긴 손가락이 천천히 데클란의 다친 어깨 위로 향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건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느껴지는,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듯한 불쾌한 감각 때문이었다.

“…움직이지 마라. 한번에 끝내는 게 너나 나나 편하니까.”

낮게 잠긴 목소리가 의무실의 정적을 갈랐다. 그의 손이 데클란의 어깨에 닿는 순간, 옅은 분홍빛의 온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H의 머리색과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은은한 빛깔이었다. 빛은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데클란의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다. H는 눈을 감고 모든 신경을 손끝에 집중했다. 어긋난 뼈가 제자리를 찾아 끼워 맞춰지는 감각, 손상된 근육 조직과 혈관들이 빠르게 재생되는 미세한 변화들이 그의 의식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꽉 다문 입술 사이로 가쁜 숨이 새어 나왔다. 안경알 너머로 길게 드리워진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골반까지 내려오는 난잡한 연분홍색 머리카락은 그의 창백한 얼굴과 대조를 이루며 더욱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마침내 어깨 속에서 마지막으로 뒤틀렸던 부분이 제자리를 찾는 듯한 느낌과 함께, 빛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H는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가 순간적으로 흐릿했지만, 이내 초점을 되찾았다. 그는 데클란의 어깨에서 조심스럽게 손을 떼었다. 방금 전까지 기형적으로 튀어나와 있던 어깨뼈는 온데간데없이 매끈한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피로가 역력한 얼굴로 데클란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보았다. 단단한 근육의 감촉만이 느껴질 뿐, 아까와 같은 이물감은 없었다.

“됐다. 이제 좀 사람 어깨 같네. 그래도 한동안은 무리하지 마라.”

“네 몸뚱이는 강철로 만들어진 게 아니니까.”

그의 목소리는 물기를 머금은 듯 축 처져 있었지만, 특유의 까칠함은 여전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제발, 좀. 조심 좀 해라, 인마. 내가 네놈 때문에 남아나는 수명이 없잖냐.”

“오늘은 이만 꺼져주고. 나도 좀 쉬어야겠다.”


“되도록이면 안 오려고 하는데 꼭 끌려오게 되더라.”

애들이 눈치는 기가막히게 빨라. 다시 제대로 붙은 어깨를 가볍게 한번 돌려보더니 멀쩡한 것 같자 자켓을 고쳐 입었다. 아까는 커피라도 뜯을 거 같더니?

“아무튼, 고생했다.”

툭툭, 머리를 쓰다듬고는 가려나 싶더니 능숙하게 비치된 커피를 타서 그의 앞에 내밀었다.

“얻어먹겠다며?”


귓가에 데클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되도록이면 안 오려고 하는데 꼭 끌려오게 되더라, 라니. 저 뻔뻔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지껄이는 낯짝을 한 대 갈기고 싶었지만, 그럴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흐릿한 시야를 데클란에게 고정했다. 멀쩡해진 어깨를 돌려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재킷을 여미는 모습은 방금 전까지 어깨가 빠져 덜렁거리던 환자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때, 데클란의 커다란 손이 다가와 자신의 머리 위로 툭툭, 가볍게 닿았다 떨어졌다. 순간 H의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피로에 잠겨 있던 신경이 바짝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감히, 이 자식이 지금 누구 머리에 손을…!

“야, 너 지금…!”

잔뜩 쉰 목소리로 쏘아붙이려던 찰나, 데클란은 이미 몸을 돌려 의무실 한쪽에 놓인 커피 머신으로 향하고 있었다. H는 어이가 없어 잠시 말을 잃었다. 저 자식은 지금 상황 파악이라는 게 전혀 안 되는 건가? 아니면 일부러 약을 올리는 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애써 억누르며, 그는 거친 숨을 한 번 더 토해냈다. 골반까지 내려오는 옅은 분홍색 머리카락이 축 처진 그의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잠시 후, 익숙한 커피 향과 함께 데클란이 다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머그컵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컵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H의 앞으로 내밀어졌다. H는 제 앞에 놓인 커피와 데클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까는 커피라도 뜯을 것처럼 굴더니, 라니. 자신이 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 이 능글맞은 자식.

“… 아주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인마.”

그는 떨리는 손을 들어 커피잔을 받아들었다. 따뜻한 온기가 손바닥을 통해 전달되자,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이 피로에 찌든 머리를 조금이나마 맑게 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녀석에 대한 짜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커피에 독이라도 탄 건 아니겠지?”

그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데클란을 쏘아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다행히 평범한 커피 맛이었다. 아니, 평소보다 조금 더 쓴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지금 자신의 컨디션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혀를 차며 빈 의자에 몸을 기댔다. 온몸의 관절이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그래, 얻어먹겠다 했으니 마셔는 주겠다만… 이걸로 오늘 건이 전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착각하지 마라.”

“다음번에 또 이딴 식으로 끌려오면, 그땐 진짜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알겠냐, 이 말썽쟁이야.”


“귀한 의무실의 전력이자 리더에게 독을 타는 용감한 짓을 할 사람이 유니온 그 어디에 있지?”

터무니도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 툭, 말하고는 반대편 의자에 앉아서 익숙하게 담배를 물었다. 다만 불을 붙이면 또 잔뜩 화를 낼걸 아는지 그냥 물고 잘근잘근 필터 부근을 씹기만 했다. 흡연자들이 으레 입이 비면 그러하듯.

“안 올 거야.”

뭐가 됐든 내 의지로는. 걱정하지 말라는 건지 뭔지 싶은 투다.


저 뻔뻔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태연하게 내뱉는 데클란의 면상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녀석은 어느새 맞은편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익숙한 손놀림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다만 불을 붙이지는 않고, 필터 끝부분을 잘근잘근 씹는 모습이 영락없이 입이 심심한 골초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여기서 담배 연기까지 맡았다가는 남아있는 이성마저 끊어질 것 같았다.

“흥. 그런 상식적인 판단을 할 줄 아는 놈이었으면, 애초에 여길 이렇게 제집 드나들듯 하진 않았겠지.”

그는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뜨겁지만 너무 쓰지 않은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감각이 나쁘지 않았다. 조금은 정신이 드는 것 같기도 했지만, 온몸에 겹겹이 쌓인 피로는 커피 한 잔으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뻐근한 목덜미를 주무르며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얇은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냉랭한 플라스틱의 감촉이 오히려 현실감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안경 너머의 시야는 여전히 조금 흐릿했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제기랄, 정말이지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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